“대한공화국(Republic of Korea) 집정관 총재인 나 이승만은 우리 국민의 일치된 요구와 구미위원부의 승인에 따라 1919년 8월 27일 자로 ‘한국 민족의 지속적인 독립 선언 및 독립 요구문’을 발표했음을 공표합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5개월이 지났을 무렵, 이승만은 미국에서 한국의 임시정부 격인 ‘대한공화국’의 집정관 총재에 취임했다. 정부 수반 격이다. ‘임시’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국가로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울과 노령(연해주), 상하이에서 각각 임시정부가 조직되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