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주황색 등불을 켜듯 열매를 맺은 감나무 한 그루. 우리 농촌의 가을은 감나무를 중심으로 향기 그윽한 풍경을 형성하면서 짙은 정취를 풍긴다.
도시에서도 우뚝 솟은 감나무는 가을의 정점을 찍는다. 20여 년 전 서정주 시인이 서울의 옛 사당동에 살 때 그의 집은 가을이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 먹음직하게 매달린 감이 선명한 색깔을 돌올하게 내뿜었다. 시인은 그러나 감을 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까치밥으로 남겨둔다고 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기온이 떨어지면 큰 과일은 따 먹지 않고, 새나 들짐승에게 양보하는 미덕이 한국인의 오랜 가을 관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