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돌으셨소? 지 딸 눈깔이 멀었는디 지금이 소리할 때요?”
딸이 손을 저으며 절규하듯 소리친다. 장터에 다녀온 아비가 술 한잔을 권해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눈이 뜨거워 일어나니 앞이 안 보인다. 소리에 미친 아비는 눈으로 갈 기운까지 목청에 쏠리게 할 요량으로 청강수(염산)를 딸 눈에 부은 참이다. 설마 아비가, 차마 이리 독한 짓을 내게 했을까. 어린 딸은 아프고 혼란스러운데, 아비는 북을 치며 “소리나 하라”고 윽박지른다. “니나 내나 소리꾼이니, 기쁘나 슬프나 원통허나 애통허나 소리로 풀고 사는 거여!” 17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개막을 앞둔 ‘서편제; 디 오리지널’ 막바지 연습 현장. 고선웅 연출가가 ‘아비’ 역 배우를 향해 말한다. “화내세요! 불쌍히 여기지 마세요! 계속 북을 치세요! 딸을 계속 보세요! 물러서면 안 돼요!”